정동영 전 경남도의원
문명의 척도는 시대에 따라 달리 인식되어 왔다. 구한말 개화기 때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반 백년 가까이 전기·전화·철도로 대표되는 전기·통신·이동 수단의 유무로 그 지역의 문명화 정도를 가늠했었다. 전기가 가설되어야 새로운 문물의 작동이 가능하고, 전화가 개통되어야 다른 지역과의 소통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며, 철도가 연결되어야 다른 지역과의 빠른 이동이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이들 세 가지 문명화 수단이 존재해야만 지역 발전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들의 개통이 도시화를 의미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현재의 기준은 무엇일까? 필자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바로 KTX 개통의 유무다. 앞서 언급한 전기·통신 수단은 이미 경향(京鄕)의 구분을 넘어 전세계를 동일한 실시간 소통권으로 연결했기에 별다른 기준이 될 수 없다. 남은 것이 바로 이동 수단인데 국내로 한정해보면 수도권과의 시간적 거리를 획기적으로 단축시켜주는 KTX가 그 지역의 발전 척도라 생각된다.
잘 아시다시피 2004년 경부선을 시작으로 개통된 KTX는 종래 재래 철도는 물론 만성적인 교통체증으로 사회경제적 불이익이 큰 도로교통에 비해 빠르고 정확한 이동으로 승객들의 호평을 받아왔다. 이에 우리 경남에서도 경부선 밀양을 시작으로 경전선 창원, 마산, 진주에까지 KTX가 개통되었으며, 특히 2020년 김천과 거제를 연결하는 이른바 남부내륙고속철도(이하 남부내륙철)의 예정으로 우리 남부권인 통영, 고성, 거제에도 그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계속해서 늦어지는 공기(工期)이다. 문재인 정부의 대선 공약 및 김경수 지사의 지선 공약으로 채택된 남부내륙철도 사업이 김경수 지사가 당선된 후인 2019. 1월에 예타 면제 사업으로 선정되고 2022.1월 기본계획안이 고시까지 되었는지만, 정권이 바뀐 후 적정성 재검토 사업으로 분류되어 지금까지 시간을 끌어오다가 올 연말에 착공을 시작한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올 7월 언론에 의하면 이번 2025년 추경안 관련 예산이 당초 1천189억 원에서 688억 원으로 무려 42%나 삭감되었다고 한다. 과연 2030년 개통이 제대로 될지 의문스럽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 사업이 통영·거제·고성 등 남부권뿐만 아니라 진주·합천·거창 등 서북부 권역까지 큰 영향을 끼치는 전경남적 사업인데도, 지역 정치권이 너무나 정파적으로 접근하고 소홀히 하지 않았는지 의구심이 든다. 더군다나 현재 국회 국토교통위원으로 우리 경남에는 김종양(국민의힘, 창원 의창), 이종욱(국민의힘, 창원 진해), 우리 지역 정점식(국민의힘, 통영·고성) 국회의원이 있다. 해당 상임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있음에도 관련 지역구 예산이 삭감되는 것을 방치하는 것은 심각한 직무유기라 생각된다.
지역 발전에는 여도 없고 야도 없다. 오직 지역 발전만이 모든 정책의 척도가 될 뿐이다. 필자 역시 제11대 도의원으로 재직하면서 남부내륙철도 조기건설을 위한 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당시 김경수 도정의 남부내륙철도 사업에 적극 협력했었다. 실제 해당 특위에는 민주당 의원은 물론 당시 국민의힘 의원들도 여러 동참하여 소외된 지역발전을 위해 한데 힘을 모았었다. 그 결과 예타 면제를 비롯해 많은 성과들을 내며 사업의 급진전을 이루어 냈었다.
지금 우리 통영시민들은 오직 KTX 건설만이 너무나 피폐해진 통영경제를 살리고, 소멸위기의 통영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는 엄청난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사업이 윤석열 정부 집권 이후 어떻게 되었는가? 사업성 재검토를 비롯해 여러 가지 구실로 이 사업이 얼마나 표류하였는가? 그 가운데 우리 지역 국회의원은 무엇을 했는가? 그 결과가 고작 이번 예산 삭감인가라고 되물을 수밖에 없다.
예전 우리 지역 출신 정해주 국무조정실장의 경우, 기존의 대전-진주고속도로를 통영까지 연장해 얼마나 지역에 큰 혜택을 주었는가? 없는 노선까지 만들어 지역발전을 이끈 사례도 있는데, 하물며 계획된 사업에 예산 하나 방어하지 못하는 국회의원은 크게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통영이 경쟁 도시 여수에 곱절 이상 관광객을 빼앗긴 원인 중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KTX 미개통을 꼽는다. 실제로 여수는 전라선 KTX가 개통되고 나서 서울과의 시간적 거리가 획기적으로 단축되어 안정적으로 천만 관광객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통영 시민들이 그야말로 학수고대하며 남부내륙철도 사업을 기다리고 있는데 예산 삭감으로 인한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이는 정치인 하나 없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고, 부끄럽다.
이제는 우리지역 국회의원과 시장, 도의원 등 정치인들이 삭감된 예산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답을 시민들과 지혜를 모아 내놓아야 한다. 부디 우리 시민들의 희망과 기대를 저버리지 말기를 바란다.
정치는 권력적 자원 배분이며, 예산은 그것을 구체화하는 정책적 수단이다. 그래서 거창하게 계획만 잡아 놓았다가 결국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차일피일 미루다가 사라지는 정책이 얼마나 많은가? 예산이 곧 정책적인 힘이요 추진력인 것이다. 백 마디 현란한 말보다 몇 푼의 예산 배정이 더 큰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이제 우리 통영이 나가야 할 바는 분명하다. 자신의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지역 발전을 도외시하며 자신의 지위만 생각하는 선출직이 아니라 지역 발전을 제일의 정책 목표로 두고 중앙과 지방을 넘나들며 오직 통영만 생각하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 그러한 선량이 통영 발전의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길 기대하면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