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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9-21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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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저장장애와 임대 피해 사이, 지자체의 중재 필요

김 경 은

기사입력 2026-08-28 16:20 수정 2026-09-01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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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장장애가 의심되는 임대가구의 문제를 당사자와 집주인 사이의 민사분쟁으로만 방치해서는 안 된다. 지자체가 조기에 개입해 당사자를 치료로 연결하고, 임대인과의 갈등을 중재할 수 있는 공적인 창구를 마련해야 한다.

 

저장장애는 물건이 많거나 정리를 잘하지 못하는 상태와 다르다. 물건의 실제 가치와 관계없이 버리는 데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그 결과 침대와 식탁, 현관과 욕실 등 생활공간이 본래 기능을 잃는 상태를 말한다.

 

치료가 어려운 이유 가운데 하나는 당사자가 자신의 행동을 문제로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는 데 있다. 필요한 물건을 보관하고 있을 뿐이며 주변 사람들이 지나치게 간섭한다고 생각한다면, 치료를 권하는 말도 물건을 빼앗으려는 시도로 받아들일 수 있다.

 

반대로 자신의 상태가 다른 사람에게 이상하게 보인다는 사실을 알고도 수치심 때문에 숨는 사람도 있다. 필자가 겪은 한 세입자는 전기가 끊긴 방에 물건을 가득 쌓아놓고,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밤늦게 짐을 옮겼다. 왜 낮을 두고 밤에 이사하느냐고 묻자 쪽팔리잖아요라고 대답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상태가 평범하지 않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인식은 치료로 이어지지 않았다. 문을 닫고 연락을 끊은 채, 물건을 아무도 보지 않는 다른 방으로 옮겼다.

 

이 사례는 저장장애 문제를 해결할 때 청소 지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물건을 한 번 치웠다고 물건을 붙들고 감추는 행동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당사자가 치료받지 않은 채 물건만 이동하면 다른 집이나 창고, 또 다른 임대공간에서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

 

현재 여러 지자체는 저장강박 의심 가구에 폐기물 수거와 청소, 방역, 주거환경 개선 등을 지원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정신건강기관과의 연계도 이루어진다. 필요한 사업이지만 지원 대상이 당사자의 실제 거주지에 집중되면, 다른 사람의 방을 빌려 물건만 보관하는 사례는 발견하기 어렵다.

 

당사자는 다른 주소에서 평범하게 생활할 수 있다. 가족과 이웃, 거주지의 복지 담당자도 별다른 문제를 발견하지 못한다. 그 사이 임대인은 사람이 살 수 없게 된 방을 마주하지만,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

 

경찰은 범죄나 긴급한 안전 문제가 확인되지 않으면 개인 간 임대차 갈등에 개입하기 어렵다. 정신건강기관도 당사자가 직접 찾아오거나 가족과 관계기관의 의뢰가 없으면 숨어 있는 대상자를 발견하기 쉽지 않다. 결국 집주인에게 남는 것은 변호사를 선임하고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방법뿐이다.

 

그러나 소송은 방을 돌려받기 위한 절차이지 당사자를 치료하는 절차가 아니다.

 

강제집행으로 물건을 빼내더라도 당사자가 다른 공간으로 옮기면 문제는 계속된다. 임대인은 오랜 기간 방을 사용하지 못한 손해와 밀린 월세, 변호사비와 집행비용, 청소비와 시설 복구비를 감당해야 한다. 판결을 받아도 상대에게 재산이 없다면 실제 피해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한쪽에는 치료로 이어지지 않는 일회성 청소가 주어지고, 다른 한쪽에는 오래 걸리는 소송만 주어지는 셈이다.이 간극을 메울 수 있는 곳은 지자체다.

 

우선 임대인이 장기 연락 두절과 심각한 저장 상태를 신고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다. 신고를 받았다고 집주인에게 세입자의 개인정보를 제공하자는 것이 아니다. 담당 기관이 가능한 범위에서 당사자의 소재와 안전을 직접 확인하고, 정신건강의 어려움이 의심되면 정신건강복지센터나 전문기관의 평가로 연결하자는 것이다.

 

집주인의 신고가 진단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 방에 물건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저장장애라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 다만 생활공간이 본래 기능을 잃고, 장기간 연락이 끊겼으며, 같은 물건이 다른 공간으로 계속 이동하고 있다면 전문적인 확인이 필요한 신호로 볼 수 있다.

 

지자체는 치료 연계와 함께 분쟁 중재도 담당해야 한다. 당사자의 동의를 받아 집주인과 협의할 자리를 마련하고, 물건을 언제까지 분류하고 방을 반환할지 구체적인 일정을 세워야 한다.

 

당사자가 정리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면 전문업체와 자활기업, 기존의 주거환경 개선사업 등 지역 자원을 연결할 수 있다.

 

합의한 반환 일정과 비용 부담도 기록해야 한다. 치료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집주인에게 방을 무기한 내주라고 요구해서는 안 되며, 당사자의 어려움을 이유로 임대인의 피해를 감수하라고 해서도 안 된다.

 

지자체가 밀린 월세와 복구비를 대신 지급하라는 주장이 아니다. 이미 지역에 존재하는 복지·정신건강·주거·청소 자원을 조정해 치료와 피해 종결이 함께 시작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중재는 행정비용을 늘리는 일로만 볼 수 없다. 문제가 장기간 방치되면 오염과 해충 피해가 커지고, 강제집행과 폐기물 처리, 반복되는 청소 지원과 민사소송에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이 들어간다. 당사자가 물건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 다음 임대인과 이웃에게 피해가 이어질 수도 있다.

 

조기에 발견해 치료와 정리, 방 반환을 함께 조정하는 편이 당사자와 피해자뿐 아니라 지역사회 전체의 비용을 줄이는 방법이다.치료와 책임은 서로 반대되지 않는다.

 

치료는 당사자가 같은 행동을 반복하지 않도록 돕는 일이다. 책임은 그 행동으로 생긴 비용이 아무 관련 없는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는 일이다.

 

저장장애 당사자를 미친 사람으로 낙인찍고 방치해서도 안 된다. 그렇다고 피해를 입은 집주인에게 이해하고 참으라고 요구해서도 안 된다.

 

당사자는 치료받을 통로가 필요하다.집주인은 사건을 끝낼 통로가 필요하다.

지자체는 바로 그 두 통로를 연결하는 중간에 서야 한다.


김 경 은

경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장애인복지 현장에서 10년간 사회복지사로 일했으며, 임상심리사로서 심리상담실을 12년간 운영했다. 현재 독립 연구자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정서, 이 무자비한 녀석!이 있으며, 월간 생활성서20268월호에 여름의 외로움을 게재했다.

 





 

 
통영인터넷뉴스

(tyinew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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